
아들러 심리학/ 우울증, 트라우마 극복
아들러 심리학이란 현재,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할 것을 강조하고 있는 심리학이자 철학입니다. 이를 깊게 알려고 들수록 반감이 드는 심리학입니다. 정설적인 상식에 반하는 주장을 하는 이른바 안티-테제인 주장으로서 현대에 너는 무조건 잘될 거야. 너가 힘든 이유는 다 다른 이유가 있어라고 지금 당장의 현상과 증상에 대해서만 위로를 주는 뻔한디 뻔한 자기계발서 혹은 양산되는 에세이와는 양상을 달리 합니다.
아들러 심리학은 지금 현재의 나를 만들거나 영향을 준 트라우마같은 사건에대해 그 것이 원인이 되어 지금의 나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것에대해 강하게 부정합니다.예를 들어서 어린 시절 부모에게서 받은 폭언과 폭행이 현재의 나를 만든 것이 아니라 현재의 내가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폭언과 폭행을 받은 과거의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고 지금의 내 목적을 성취하게 위해서 선택했다고 말합니다.
이는 얼핏보면 인간의 이기심을 극대화해서 보며 허무주의처럼 보이지만 더 깊게 들여다보면 그게 아닙니다. 아들러 심리학은 자신의 자아와 현재는 자기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과거의 경험에 결코 종속되지 않으며 더 나아가 과거란 실질적으로 없는 거라고 말합니다. 지금 내가 힘들고 우울증을 앓는 이유가 과거의 트라우마 예를 들면 부모의 폭언과 폭행이아니라 내가 지금의 나를 정당화하기 위해 과거의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여 현재까지 끌어들여와 역할을 부여하고 우울증또한 자신이 선택한 거라고 과감히 말합니다.
아들러 심리학이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하나요?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개인에게 자유를 줍니다. 개인은 과거의 경험에 종속된, 과거의 한 점으로 부터 이어진 선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아들러 심리학은 개인에게 선택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합니다. 과거의 경험과 단절하고, ( 사실상 단절하고라는 말은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통용되지 않습니다. 개인의 필요에 따라 혹은 목적에 따라 과거에 의미를 부여하고 현재로 불러온 셈이니까요 ) 지금 이 순간의 주어진 것에대해 어떻게 활용하여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를 논의합니다. 반발심을 내려놓고 다시금 생각해보세요. 지금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과거에 종속된 존재가 아닙니다. 과거의 경험으로 인해 지금의 현재가 이루어진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선택한 것이고 여러분이 이미 지니가고 존재하지도 않은 과거에 의미를 부여해서 불러들여온 것입니다. 왜냐고요? 그게 당신의 나태와 지금 당장의 아픔을 정당화 시켜줄 수단이니깐요.
이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 들이신다면 여러분은 과거에 얽메인 쇠사슬을 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다시 강조하겠습니다. 과거는 없습니다. 현재의 자신은 여러분이 규정할 수 있고 선택할 수 있습니다. 자립하십시오. 이 의미를 오해하지는 마세요. 과거에 저항하고 미래의 닥칠 어려움에 걱정하고 철처히 준비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자립이란 자신이 몇 점 짜리의 자신이든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렇다면 100점으로 나아가려면 지금 당장 어떻게 해야하는 지 고민하고 선택하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것이 자립입니다 ( 자기중심적이라는 의미와는 상반되는 개념입니다. ) 오히려 나 자신을 희미하게 하며 타인과의 관계속에서 자기효능감을 가지며 사회에 공헌하는 것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사고에 의해 무인도에 떠밀려간 인간 또한 사회적인 동물입니다. 갓난아기때 떠밀려가지 않은 이상 그 사람은 타인의 존재를 알며 또한 그리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들러 심리학이란 정리하자면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오로지 지금 이 순간이다가 핵심적인 근간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경험은 우리에게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존재하지 않을 뿐더러 우리에게는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자유의지란 성경에서 말하는 자유의지가 아니라 우리는 이제 앞으로 무엇을 할 지와 내 자신이 가질 생활양식 혹은 태도를 지금 현재에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뜻입니다. 너무 통쾌하지 않습니까? 프로이트의 트라우마에 따르면 과거의 경험이 원인되어 현재의 내가 결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것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할 까요?. 과거를 바꾸던가 아니면 현재의 나 자신을 카운슬링이나 약물치료 혹은 성공경험을 통해 혹은 과거의 트라우마 대상에대한 복수를 통해 극복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들러 심리학을 이해하고 실천한다면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과거는 현재의 나를 정의하지 않습니다. 흘러간 과거에서 더 나아가서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지금 할 일은 주어진 것을 바탕으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 또한 아들러 심리학을 받아들이는 중에 몇 번의 의구심이 있었습니다. 현재에만 집중하고 과거와 미래는 없는 셈치라니 솔직히 말이 안되지 않습니까? 제 입장에서는 과거라는 개념을 소거하라는 주장은 잘 받아들여졌고 도움이 됐습니다. 왜냐하면 저 또한 아버지의 알콜중독으로 폭언과 학대를 받은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8년 넘게 정신과 진료를 받았고 아버지를 받아들이려는 노력과 동시에 아버지를 틈틈히 증오했습니다. 하지만 과거 경험에 대한 의미는 내가 목적에따라 선택했다는 주장과 과거는 없는 것이다, 현재의 나는 내가 규정하고 선택할 수 있다는 주장을 이해하고 받아들인 순간부터는 마음이 한결 나아지고 과거에대해서 더 이상 생각하고 심각한 의미부여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가끔씩 떠오릅니다. 여기서 저도 반문을 가졌고 지금 가지고 있는 저만의 신념은 과거는 현재의 내 자신의 상태와 처지를 정당화하고 핑곗거리 삼을 수단으로 삼으면 안되지만 그 과거의 사건의 촉발 시점부터 몇 년동안은 인생의 방향성에 영향을 주었고 그로 인해 나라는 화살촉이 나아가야했을 진로에 각도 변화쯤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과거의 사건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다고 넋두리만 늘어놓고 안주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냉철히 말해 무엇이 바뀝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현재 내가 주어진 것을 가지고 무엇을 하겠느냐 입니다.
그런데 아들러 심리학에대한 저의 반문은 또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미래까지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현재 이 순간에만 집중하고 현재의 점을 찍는 춤을 추는 데만 집중하라니… 제 입장에서는 말도 안되는 것 같이 느꼈습니다.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키네시스적인 인생론을 부정합니다. 키네시스적인 인생론이란 쉽게 말해 시점과 종점이 정해져 있는 운동입니다. 이 키네시스적인 인생론에서는 도착점에 도달하기 전까지의 과정은 모두 불완전합니다. 쉽게 말해 도착점에 도착하지 못하면 실패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가 오히려 현재에 안주하는 정체된 상태에 빠져있다면 목표의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저는 생각했습니다. 적절한 목표의식은 정체라는 현재 관성에서 벗어나 자극을 주어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들러 심리학은 최종적인 인생의 목표를 부정합니다. 인생을 등산에 비유하는 것도 부정합니다. 우리는 오로지 길을 걷는 존재이며 정상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목표의식이 없는 현재의 이 순간, 그 점에대해서만 집중하며 춤을 추는 그런 삶의 행태야 말로 향락주의이며 허무주의가 아닌가 저는 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게 제 안에서 여러가지 반문과 사색이 반복된 가운데 제 나름대로의 해석을 도출해 낼 수 있었습니다.
바로 아들러 심리학에서 말한 지금 이 순간의 점이란 정체되어 있는 점이 아니라 계속해서 찍혀나가는, 다시 말해 어딘가로 나아가는 점이라는 것입니다. 그 것을 촉발하기 위한 외부 에너지로서 저는 단중기적인 목표의식을 끌고 들어 왔습니다. 아들러 심리학에서도 일의 관계에대해 개인이 자신의 이기(이기심을) 최대한으로 발현하고 실현한다면 그 것이 타인에대한 공헌이 된다고 협력을 기반으로하는 공동체 사회에서는 그렇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들러 심리학에서도 우리는 우리를 위헤 단중기적인 목표의식을 세우고 그것을 촉발제삼아 정체되어 있는 우리를 움직여 지속적으로 나아가는 점을 찍을 수 있다고 현재의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 하지만 그 작용의 과정속에서 타인에대한 의식과, 인정욕구가 포함되어서는 안됩니다. 이는 조금 복잡하면서도 개인에따라 반발이 심하니 다음 글에서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거기에는 조금의 이기심이 포함되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테면 경제적 자립을 이루고 싶다던가 하는 등의 물질적 욕구 말이죠. ( 유하게 말했지만 쉽게말해 돈 벌어서 부자가 되고 싶다는 마인드, 솔직히 현대사회인들이 추구하는 목표가 대부분 돈에대한 자유 아닌가요? ) 하지만 이는 수단으로 삼아야할 뿐이지 어느 정도의 궤도에 이르렀을 때는 떨쳐버려야 합니다. 아들러 심리학에 의하면 우리는 사회속에 자신이 있을 곳을 찾고, 거기서 자신의 의미를 찾는 다고 합니다. 사회에대해 우리가 무엇을 공헌하는 지를 느낌에 따라서 자신의 가치를 느끼고 이는 행복으로 이어진다고 합니다. 물론 추후의 과정이 있기는 하지만 이 포스팅에 다 담기는 역부족이라 추후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반문이 일은 부분은 제 나름대로의 해석을 넣었기에 어떻게 보면 왜곡해서 부연설명을 끼어넣은 부분이 있지만 아들러 선생님은 개의치 않아 하실거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뿌듯하게 생각하시겠죠. 왜냐하면 아들러 심리학, 개인심리학은 이론적인 학문이아니라 실용적인 더 나아가서 오픈소스처럼 사회 전반에서 기능하며 더 개선되길 원하는 학문이니깐요.
정리해볼게요. 아들러 심리학은 과거를 부정한다. 과거의 사건과 경험은 현재의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오히려 과거를 불러와 현재 자신의 핑곗거리와 방어기제로 삼은 것은 내 자신이다. 아들러 심리학은 우리에게 선택할 자유가 있다고 하며 과거보다 더 강한 힘이 있다고 한다. 미래 또한 존재하지 않을 뿐더러 우리는 정상을 향해 등산하는 것이 아닌 그저 길 위를 걸으며 지금 현재에 집중하며 점을 찍는 과정에 불과하다. 다만 제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이자면 그 점이란 계속해서 생각보다 짧은 시간안에 찍히는 점이며, 개인적인 의도를 가지고 나아가는 점이라는 것 입니다.
여기까지가 저의 아들러 사상과 심리학에대한 소개와 저의 의견이 였습니다. 어떠한 반론과 의견, 정말 환영하고 진심으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제 사상의 근간을 뒤흔들어버린 철학은 오랜만이였기에 아들러 심리학, 철학에대해 저보다 더 깊이 이해하신 분들의 소중한 고견을 기다립니다. 저를 또 한 번 뒤흔들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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